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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empty chair 100*100cm oil on canvas 2008

골방에서

 

 

 

쉽게 말해서 모든 것은

스스로를 부정합니다.


나는 나를, 너는 너를,

행위는 행위를, 정지는 정지를,

시는 시를, 그림은 그림을,

사랑은 사랑을,

부정은 부정을.


모든 것이 언어로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인식이 없고, 인식이 없으면

세계가 없으므로.


언어의 지배를 받는 이 세계는

무엇이든지 가능하고

이미 가능한 무엇이든지

언어 안에서 부정될 수 있으므로,

그러므로 진실은 언어의 원리에 모두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현명한 나는 골방에서

언어의 신에게

부정으로써 경의를 표합니다.

중금속

 

거칠은 금속 가루를 한 움큼 들이키고

이제 난 욕탕의 물 속에 나를 담는다.


어제 보다 더 무거워진 난

욕탕의 깊이 보다 더 깊이 가라앉는다.

 

난 조금 더 깊이 가라앉아

 

아래 집 욕탕의 어여쁜 여인과

잠시 유쾌하고 야한 대화를 나눈다.


그리곤 조금 더 가라앉아

어둠에 갖혔다.


어둠 속에서 난 파리를 만났다.

파리는 그의 금속성 광체로 거대해져가고

난 내 금속성 광체로 작아져 갔다.


아름다운 금속의 경험이다.


기침을 세 번하고 난 다시 가벼워져

수면에 올랐다.

건망증 100F oil on canvas 2007

그림을 그리지 않다.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기 전 캔버스는 이미

 

그 허연 표면 아래 

 

완성된 화면을 갖고 있다.

 

내가 소망하는 한가지는

허연 캔버스 위에 그 이미 완성돼 있던 이면의 화면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

소박하지만, 이 소망이 나를 죽이고

나를 살린다.


어제 미명에 한 현자가 내게 다가와

내 인생 동안 그려야 할 그림은

 

오만 삼천 점이라고 말해주었다.

내 수명은 그 때까지라 하였다.

그가 옳다면, 내가 그릴 그림은 그렇게 이미 오래 전부터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옳다면, 내가 영원히 사는 길은

오만 삼천 점의 그림을 채우지 않는 길뿐임에도
 
오늘 난 나도 모르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

내일은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The graveyard 150F oil on canvas 2003

카이로스 vs. 크로노스 60P oil on canvas 2016

그림 vs글쓰기

 

글을 쓰고 나면 그림을 그리기 싫어진다.

글 쓰는 작업은 자극적이고 고요하다.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며

내게 충고하지 않는다.


반면, 그림은 내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잠과 맑은 정신,

관계, 건전함, 신앙, 자존감... 그리고 나서

다시 내게 소리친다.

'나가버려. 이 저능아. 네가 만든 내가 부끄럽다.'


글을 쓴다. 글을 써야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린다. 글을 쓰는 동안도 난 내 마음에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자.  이제  토론을 해봅시다

 

주황씨는 말합니다.

"뀌꽤이 꽈이 꺼이."


그러나 회씨는

"꾸꾸꾸이 꽈끼꽈오."

라고 반론 합니다.


누가 옳은 지 모르는 황씨는

"꾸꽈이 과이 꽈오."라고

조그맣게 금씨에게 속삭입니다.


이때 녹씨가 나타났습니다.

녹씨는 아무 말없이 팔을 벌리고

섰으며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panguins 60F oil on canvas 2003

사람이 없는 풍경.

 

 

 

이틀동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은 많아

마신 술과 함께 침전하였다.


이런 고요함, 이런 소란함이

그리웠다. 사람이 없는 풍경같은.

사람이 없는 풍경같은.


사람이 없는 풍경은 늘 사람이 만드는
 
시보다 큰 은유를 갖는다.


사람이 없는 세계는 담론으로 가득하다.

unidentified 60F oil on canvas 2016

풀섶에 이는 바람

 

의도적인 부재는 극도의 암시이다.
그것은 오히려 영속할 의미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외침이리라.

풀섶에 사는 바람이 그렇다.
 
바람의 처음은 몰라도
이는 바람, 그 감과 색은 알겠다.

언제나 거기 있을 여러 표정의 엔터테이너
오늘 그 부재형의 존재를 만나보았다.
그가 내게 자신을 수풀에 빗대어 소개하였다.

 

‘꽃이 머리를 숙인다.
큰 나무가 사크라크 소리를 낸다
다른 뿌리의 풀들이 서로 엉켜 격한 친함을 보인다.’

’이런 모습’이 본인이라 소개하였다.
거의 그렇다고 하였다.

그가 수풀에 사는 줄 알았으므로
그의 모습을 수풀을 보며 알게 되었다.

내 안의 바람.

풀섶의 바람.

풀섶에 이는 바람 100*100cm oil on canvas 2000

귀부인과 악취 100*100cm oil on canvas 2016

악취와 귀부인

 

귀부인은 늘 귀부인이며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향기만이
그녀가 그렇게 특별하거나
고결한 여인이 아님을 증언한다.

그녀에겐 역한 냄새가 난다.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을 그 고결한
악취와 역겨움.

Giorgio Armani
이세이 미야케
Christian Dior
의 향수도 감출 수 없는
그 귀부인의 귀한 악취를

그녀는 어떻게
그들은 어떻게
한 남자인 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신비로운 권력
권력과 이해의 권력

그녀는 귀부인,
그녀의 악취가 내게도
받아들여졌다.

난 어쩔 수 없는 경외심으로
그녀의 현시를 찬양하였다.

그녀는 귀부인이므로.


그녀는 그녀의 악취보다
향기로운 귀부인이므로.

Flying Clothes in Blue 208*202cm oil on canvas 2016

Flying Clothes in Blue

 

 

 

여인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오고 열정은 하늘을

불어 받치고 있습니다.


여인에겐 가족이 없습니다.

그렇게 여인에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제 한 30년쯤 지나면 그녀도 사라지겠지요.


그녀는 사라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왕 사라지려면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람이 되어 저 하늘의 깊은 푸르름을 방해하지 않고

아무도 있다고 하지도, 없다고 하지도 않는 사라짐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 저 멀리서 한 벌의 아름다운 드레스가

날아와 그녀의 머리위를 지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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