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며.​

어제 난 오래된 실내용 크리스마스트리를 다시 창고에서 꺼냈다.

한해 한 해 모아서 이젠 다 걸 수도 없는 장식품들을 펼쳐놓고 있으니

지나간 크리스마스의 기억들이 다시 내게 순서 없이 밀려온다.

크리스마스 시즌엔 늘 설렘이 있다.

그러나 그 설렘은 실상 당일이 되면

불발된 불꽃포탄처럼 어떤 아쉬움이 되어 사라져버리곤 한다.

수십 번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내가 깨닫게 된 것은

12월 25일이라는 날짜나 그 본 의미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이

내게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마스였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를 그토록 기대한다는 것은

설령 그 결과가 내 기대감과 전혀 다르다고 해도

그 자체로 완결된 하나의 실체이다.

그래서 올해도 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감을

의심 없이 설렘으로 즐기고 있다.

in the morning of Christmas 40P oil on Glass plate 2007

화가와 세상​

성공하고 싶지 않은 예술가는 없을 것이다.

성공을 유명세로 대칭 하는 오늘날엔

모두들 유명해지기 위해 참 많은 시도들을 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요즘엔 참 유명해지기가 쉬워졌다.

예능방송에 나가거나 정치적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영상을 만들기도 쉬워져서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수치스러워서 하지 않는

몇 분 분량의 기행을 SNS에 올리면 바로 유명인이 될 수도 있다.

유명해진 다음엔 그가 하는 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유명해지면 그 다음엔 많은 일이 쉬워질 수도 있다.

예술가에게 유명세는 정말 유혹적인 도구이다.

언론플레이로 유명해진 예술가가 고민이 깊지 않아 보이는 작품과

자극적인 이미지로 얼마나 많은 작품을 팔고 얼마나 많은 제안을 받는지

보고 있노라면 당장 작업실을 나체로 뛰어나가 뱀 두 마리를 목에 걸고

방송사 앞에 가서 춤을 춰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 소심함과 지독히도 좋은 기억력 때문이다.

큰 수치를 가지고 어떻게 골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부끄러운 행동으로 이름을 새긴 다음 매일 10시간 이상씩 보내야 하는

작업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그런 방식으로 자신을 알린 그 예술인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을까?

그들은 과연 다시 자신에 대한 그 후회와 자책을 홀로 직면할 수 있을까?

혼자 작업하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빨리 유명해지는 것보다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이다.

CROWN 40F oil on canvas 2000

auduience series1_ good laugh 100F oil on canvas 2011

Good laugh

웃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내 경험과 사색을 통해 알게 된 비밀은

‘웃음’이 늘 ‘초월"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나의 고정관념이 깨어질 때,

나의 언어습관과 권위체계와 어떤 종교적 믿음이 깨어지며

그것들을 관조하게 될 때

나와 우리는 미소로 시작하여 폭소하게 된다.

이러한 웃음은 우연히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천재들에 의해 디자인되는 경우가 많다.

희극인이라고 불리는 이 천재들은 이미 초월자들이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특유의 언어 감각은

초월에 길들여져있어서 그들이 디자인 한 웃음의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지배를 받아 디자인된

초월의 물길을 따라 폭포를 향해 떠내려 가게 된다.

폭포의 아래에는 파괴가 있다.

그러나 그 파괴는 또 매우 신성해서

추락자들로 다치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짧은 상승으로 자유케 하여,

이후엔 결코 전과 같은 관념에 갇혀있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신이 허락한 최고의 선물인 이 웃음에도 슬픈 비밀이 있다.

그것은 웃음의 초월효과는 매우 짧을 뿐 아니라,

그 상승감은 중독적이어서

경험자는 매번 더 큰 초월의 자극을 바라게 되며

정작 초월자들인 희극인들은 스스로를 웃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을의 향기

여름은 위풍당당하였다.

모두들 이 여름이 지나갈 걸 알면서도 의문하지 못하였다.

이 폭군의 위세는 대단하여 생각하고 느낄 잠시의 쉬는 시간도 주지 않았으며 폭염의 신기록을 갱신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최초로 경험하는 진한 열병에 원망의 대상을 찾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더위가 분노도 녹여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분노 아닌 짜증 만을 내었다.

무려 삼십일 동안, 아무런 저항 없는 짜증의 나날들.

그러나 하루 아침에, 미약한 한 울음의 빗줄기와 함께 여름은 수증기가 되어 흩어졌다.

새 계절이 왔다.

시원함의 계절. 이제 우린 이 아름다운 시원함을 입으며 감사할 대상을 찾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대상이 지난 여름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통이 안도의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나는 여름 동안 나를 지속하게 해준 몇 번의 시원한 등목 만을 기억하고 있다.

Headache 40P oil on canvas 2008

Symbol and Reality

 

 

십자가는 상징임과 동시에 사실이어야 한다.
십자가는 신이 인류에게 던지시는 매우 복잡한
Performance이기 때문이다.

Performance의 대원칙은 이렇다.
상징성을 지니는 동시에 동시적(contemporaneous)
이어야 하고, Performer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 작품의 맥락 안에 존재함과 동시에 작품의
범주를 벗어난 현실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코요테와 함께 철장에 갖혔던 요셉 보이스의
'I love America.'나 존 케이지의 4' 33"처럼
Performance가 가지는 상징이 자체의 상징성을
넘어 사실이 될 때, 이는 진실이 되어가는 것이다.

선악과가 단지 상징이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선악과는 진실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다만 신화일 뿐이다.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 하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과즙을 잔뜩 먹음은 그 살과 씨앗과 표피를 갖아야 한다.


선악과처럼 십자가도 해석에 따라 상징의 부분만을 강조하여 사실성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인간의 삶을 살다가 바울을 만났을 때, 바울은 예수님의 실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상징성만이 이제 인류에게 의미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십자가가 어떻게 신화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성이 빠져버린 상징은 결국 문학에 머물러 인간을 벗어나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은 십자가를 포함해 상징성을 지닌 사실이었다. 만약 누군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하였다면 상징성과 사실성 어느 것도 포기해선 안 된다. 인간의 진실은 늘 이 두 가지 사이에 자신의 좌표를 갖기 때문이다.

intervention 20F oil on canvas 2011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조언

 

 

그들은 모두 꼬리를 달고 있어서
그들의 뒷모습을 보아야
그들이 화났는지, 즐거워하는지, 의기소침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또 각자 다른 비중을 가지고 있어서
함께 모래 위를 걸어봐야
그들이 각각 얼마의 깊이를 남기는지 알 수 있다.


가끔 그들 중에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이가 있다.
물병을 지닌 그를 만날 때 주의할 것은
절대로 그의 물병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그의 물병을 바라보진 말아야 한다.

John Lanon with glasses 100F oil on canvas 2006

Jesus, Picasso and me 100F oil on canvas 1998

Picasso's Father said...

 


Picasso 씨 당신은 그림을 통해 진리를 추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 많은 수의 그림을 그려왔고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림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면 제 그림중에 어떤

그림이 더 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 하나를 꼽을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부터 늘 말씀하셨습니다.

' 진리는 다 거짓이다.'라고...

 

 

 

Picasso said...

 

 

 

 

피카소가 말했다.

'난 파란 물감이 없으면 빨간 물감을 씁니다.'

이 짧은 언급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였던지...


피카소가 다시 말했다.

'자유요? 그거 조심하셔야 합니다.'

...

Party, Party...

 

 

 

축제는 금기와 함께 존재한다. 금기 없는 사회에는 위반이 존재하지 않고, 위반이 없는 축제는 일상의 한 모습일 뿐이다.                

위반이 한 개인에게 그토록 의미있는 이유는 그 것이 각 개인에게 자신이 자연인이며 자유인임을 확인시키기 때문이다.          

성이 압제된 곳에는 성적 일탈을, 폭력이 압제된 곳에는 폭동을, 발언이 압제된 사회엔 욕설과 소문과 격한 논쟁을 공급하는 것이 축제이다.                       

그러나 축제가 지속되면 무질서로의 관성이 발생하게 되고 이 무질서는 인간을 죽음에 가깝게 한다. 다행히 이러한 무질서에의 공포가 축제에 규칙과 기간을 만들어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가 되어 자유를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의지를 갖게 한다.             

그래. 난 너무나 오랜동안 축제 안에 살아왔다. 난 충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내 생명을 담보하였으나 이젠 축제를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가야한다. 내 삶에서 무질서로의 위험한 관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sex party 150호 oil on canvas 1998

무디디 무딘 날카로움.

 

 

 

 

인간이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2배만 크다면

세계는 평화로웠을 것이다.


난 개미 따위에 대해 얘기하는 건 아니다.

미생물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겠다.


나만큼 큰 동물은 미생물을 위해 변명하지 않는다.

그렇듯 나의 덩치가 오직 모든 변명이다.


어쨌든 난 내가 자세히 보지 않아도 보이는

모든 생물 앞에 평화로운 동물일 것이다.


내 등치가 지금의 두배가 넘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며

먹지 않는다면

세계는 네 배로 넓어지고

만행은 사라질 것이다.

 

 

Giant 60F oil on canvas 2011

Jesus, Picasso and me 100F oil on canvas 1998

Picasso's Father said...

 


Picasso 씨 당신은 그림을 통해 진리를 추구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전 많은 수의 그림을 그려왔고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림을 통해 진리를 추구한다면 제 그림중에 어떤

그림이 더 진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전 하나를 꼽을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제가 어릴 적부터 늘 말씀하셨습니다.

' 진리는 다 거짓이다.'라고...

 

 

 

Picasso said...

 

 

 

 

피카소가 말했다.

'난 파란 물감이 없으면 빨간 물감을 씁니다.'

이 짧은 언급이 나를 얼마나 자유롭게 하였던지...


피카소가 다시 말했다.

'자유요? 그거 조심하셔야 합니다.'

...

사랑하지 않기 위한 논리들.

 

 

 

 

사랑은 늘 완전함을 추구한다.

다시 말해, 사랑은 완전해야 하며,
 
완전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정의가 '어떤 존재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이다'라고 볼 때,

한 인간이 어떤 이, 혹은 모든 이를 사랑하기 위해선

그가 가진 상대적으로 합당한 가치를 내어놓아야 하는데

그것은 천원짜리 지폐한장으로 고급양복을 사려하는

것보다 더 뻔뻔스러운 시도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인간이 세상에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선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초월적 교환수단이

필요한데, 그런 가치있는 수단이 인간에게 있을까?


개인의 생명을 버리는 정도의 초월적 행위가 아니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어떤 한 사람 조차의 가치와도

바꿀 수 있는 대체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 인간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최소한 그 목적을 위해 죽어야 한다.

그러나 이 죽음은 그 자체만으론 아직 사랑을 위해 충분치 않다.
 
사랑을 위한 이 죽음은 독특한 상징화의 과정을 통해서
 
그 죽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증거를 갖아야 한다.


이런 과정은 죽음의 완결된 증언과 상징화를 동반해야하며
 
세계적인 규모의 미디어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그 과정을 방해할 만한 어떤 부정적인 평판도 제거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난 사랑할 수 없다.

완전한 사랑이 아니면 사랑의 과정은 무의미하다.

사랑은 결과이며 그 이루어짐의 과정은 완전해야 한다.

신이 아닌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을 모방할 뿐 사랑할 순 없다.

오해 60F oil on canvas 2006

Symbol and Reality

 

 

 

십자가는 상징임과 동시에 사실이어야 한다.

십자가는 신이 인류에게 던지시는 매우 복잡한

Performance이기 때문이다.


Performance의 대원칙은 이렇다.

상징성을 지니는 동시에 동시적(contemporaneous)

이어야 하고, Performer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 작품의 맥락 안에 존재함과 동시에 작품의

범주를 벗어난 현실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코요테와 함께 철장에 갖혔던 요셉 보이스의

'I love America.'나 존 케이지의 4' 33"처럼

Performance가 가지는 상징이 자체의 상징성을

넘어 사실이 될 때, 이는 진실이 되어가는 것이다.


선악과가 단지 상징이라는 주장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선악과는 진실의 범주에 들지 못한다. 다만 신화일 뿐이다.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 하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과즙을 잔뜩 먹음은 그 살과 씨앗과 표피를 갖아야 한다.


선악과처럼 십자가도 해석에 따라 상징의 부분만을 강조하여

사실성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와

인간의 삶을 살다가 바울을 만났을 때,

바울은 예수님의 실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상징성만이 이제 인류에게 의미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십자가가 어떻게 신화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성이 빠져버린 상징은 결국 문학에 머물러 인간을

벗어나선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은 십자가를 포함해

상징성을 지닌 사실이었다.

만약 누군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신앙의 대상으로

 

결정하였다면

상징성과 사실성 어느 것도 포기해선 안 된다. 인간의 진실은 늘

이 두 가지 사이에 자신의 좌표를 갖기 때문이다.

simultaneity 100F oil on canvas 2013

의도에  대한 변명

 

외부적 의도와의 타협이 

그림을 추하게 만든다는 얘길 들은 적이있다.

의도는 돈에서 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의도는 투쟁에서도 오고

의도는 생존을 통해서도 생겨난다.

 

숭고함은 무엇인가?

영원한 투쟁과 영존의 욕구가 아닌가?

 

그렇다면 타협의 추함은 치열하지 못함에 대한 비난이지

순수성에 대한 것은 아니리라 생각된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타협하고 영향을 받으며 의도를 갖고

작품을 만들어낸다. 

대공황 100F oil on canvas 2013

느끼함에 대한 비난

 

 


느끼함이 무엇인가?
그것은 잉여이다. 별 쓸데 없는 에너지를
잔뜩 쌓아두고 이 아름다울 세계의 심미적 space를
마구 먹어들어가는 그것은 비계덩어리 괴물이다.

그렇다면 느끼함은 무엇인가?
느끼함은 침범이다. 나와 너의 경계를
그것과 저것의 경계를 허락없이
넘어오는 이것은 갑작스러운 습격이다.

그래서 느끼함은 무엇인가?
그래서 느끼함은 아무도 받아들일 수 없는 권력이다.
엄지 손가락을 뻗어
아래로 떨구는 느끼함은
폭군의 힘없고 살진 선고이다.


그렇다. 그렇게도 억지스러운 이 혓바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약한 이들의 정성어린 봉사의 입이다.

 

reading the megazine 20F oil on canvas 2012

self-portrait in the battlefield 20F oil on canvas 2012

절대악​

내가 아는 '절대악'은
느끼함'과
갑작스러움'과
'지루하게 함'이다.

선악은 늘 '기준'과 함께 존재한다.
또 난 '미'학자이므로 내게 '악의 기준'은
'미를 방해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게 '절대악'은
'느끼함'과
'갑작스러움'과
'지루하게 함'이 되었다.

'미'는 주관적이다.
'미'에 '합의'는 있어도
'이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느끼함'과
'갑작스러움'과
'지루하게 함'은
늘 '미의 합의'를 방해한다.

'미'가 '악'이 아니라면
'느끼함'과
'갑작스러움'과
'지루하게 함'은 늘 악하다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난
'약간 악한 인간'이다.

한 예언자의 고백

 


내 한 마디가 세상을 그렇게 바꾸어 놓으리라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난 그저 내가 원하는 세상을 묘사하였을 뿐인데
역사는 내 제안을 대안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난 이제 성인(聖人)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세상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심지어 내가 말하는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난 할 말이 있고, 부를 노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내 노래를 이해하려 오늘도
작은 마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 난 노래합니다.

 

 


랄랄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라.
해가 진다면, 달이 뜨리요. 달이 지고나면, 어두움만 가득히.
랄랄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라.
흑암이 짙어야 그 속에 구원이, 짙을 수 있어야 

어둠은 걷히리.


랄랄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라.
아침이 오면은 세상이 밝아지고, 그제야 우리는

행복을 노래하리. 
랄랄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라.


다 같이


랄랄라. 랄랄라. 라라라라. 랄랄라.
랄랄라. 라라라라. 랄라라랄라. 랄라라.

순례 20F oil on canvas 2012

모사의 당연하고 윤리적인 전략

 

검을 들어라. 그리고 싸워라.

죽지 않아야 한다. 제발 하나도 죽지 말아야 한다.


너희는 선발대. 죽기 위한 영웅들이다.

아마 그리 오랜 시간 버티진 못할 너흰 선발대이다.

그러나 하나도 죽지 말아라.


창을 들어라. 말에 타라. 그리고 싸워라.

너희는 기마병. 선발대를 밟고 넘어 빠르게 공격해야할

너흰 기마병이다.

 

선발대를 밟고 넘어 빠르게 공격해야 하겠으나

선발대를 밟진 말아라.


포를 들어라. 성벽을 부숴라. 그리고 웃어라.

너희는 포병. 살아남은 선발대와 기마병의 길을 열어

 

전쟁을 끝낼 너흰 포병이다.

 

성벽을 부수고 길을 열어야 하겠으나

사람을 맞추진 말아라.


내 윤리와 정의를 져버리지 않은 모든 지략을 전하였으니

이제 난 승리를 위해 기도해야 하겠다.

우리 승리를 쟁취하되 아무도 죽이거나 죽진 말자.

여행 중에  100F oil on canvas 1998

축복은 단순하다.

그러나 꾸준한 축복은 해석이 필요하다.
내게 기대하시는 바가 있는 것인가?
내게 자격이 있는가?
과연 축복이 저주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증거인가?


난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묻는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하나님께선 말씀하시지 않고
또 다시 오랬동안 잠잠한 축복을 내리신다.

그리고 천둥과 번개와 비와 해일이 일어났다.
내 집은 고지대, 난 아무 물리적 피해 없이
자연의 거대함만을 느끼며 하나님께 한 마디 건낸다.

감사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언가...
난 우연히 벼락맞아 죽은 사람처럼
어쩌다 축복을 받은 사람같다.

내가 저주를 받았어도
감사할 수 있었을까?
부처처럼 고고하게 축복을 버릴까?
다시 하나님은 돌개바람과 잔혹한 정열과

홍수를 일으키신다.
그러나 나의 집은 높은 산의 깊은 동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재난의 음성만 듣는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마디,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난 온화하며 진실하고
교만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

reward 20F oil on canvas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