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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cators

 

기호는 가장 작은 단위의 창작물이다.

 

일반적으로 기호에 점과 선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것들이 최소의 형태를 지닌 unit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들과 선들이 단순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리 간단하게 해석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의미가 얇은 선과 점들의 의도적 교차 속에 중첩되어 호환되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호는 약속이다.

 

동일한 형태의 점도 약속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이 그들 사이의 어떤 규칙과 합의가 만들어져가는 과정인 것처럼 소통되고 공감되는 살아있는 기호는 합의를 통해 만들어져간다. 그 합의는 욕망이나 생존처럼 원초적인 보편성에 기인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논리와 당위로 포장되어있을 것이다.

기호가 면적과 색채를 지니면서 형태를 연상하게 한다.

이러한 기호의 포장을 벗기고 다시 살아있게 하는 것이 내가 이번 작업을 통해 의도한 궁극의 목표이다. 나는  건조한 기호에 욕망을 불어넣고, 처절하게 울부짖게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합의된 최소한의 언어가 성육화되고 오히려 세속화되어 사람의 근본형상과 숭고함이 동시에 보여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의 완성은 기호가 가진 소통의 운명처럼 관객의 해석으로 완성될 것이다.

 

기호의 초현실적 해석

 

초현실주의가 기호와 상징을 욕망으로 해석해낸 일면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면 그 안에서 기호를 이용한 초현실주의의 가장 완성된 형태는 호안미로로부터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꽃, 여인, 세계, 별,  원형과 원색의 면 등 매우 제한된 몇 개의 기호만을 사용하여 추상적 형태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그 이유를 그의 작품의 목적이 서술적 메세지 전달이 아니라 오히려 색과 형태의 배치를 통한 조형성으로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각적 언어가 줄 수 있는 의미라는 것이 서술되는 언어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미로의 의도에 일단의 동의를 표한다. 반면 나는 조형적 카타르시스를 넘어 내가 만들어낸 종합적 기호를 통해 관객에게 인생에 대한 어떤 해석의 틀로서의 의미전달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시말해, 시각적 기호를 이용한 내 작품이 인생을 모방하여 해석자에게 한가지 일방적 강요가 아닌 선택이 가능한 다중적, 중의적 대상이 되어 사색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화살표에 대하여

 

나는  화살표에 애착을 갖고 있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물을 해석했을  때 취한 방식, 즉 ‘이것’,’저것’의 존재를 주변사람들에게 확인시켰을 때를 시작점으로하여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나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직면의 방식까지를 아우르는 모든 기초적 인식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시각적 도구에 대한 동반자적 애착이다.

 

이번전시에서 나는 이 ‘화살표’의 방향성을 따라 심리적 단체여행을 하고 있다. 그 방향성이 영원을 향하기를 바라는 것이 가이드로서의 나의 작가적 욕심이지만, 그 화살표가 최소한 나자신이나 관객개별을 가리킬 때, 모두가 정직하게 그 뾰족한 지적을 직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도전이자 실험정도가 되어도 의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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