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십자가 cross in black and white 10F oil on canvas 2021
죄 없는 악인, 선한 죄인이 존재하는 이유
그렇다면 악을 행하지 않고도 죄를 짓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가능하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범죄는 사회에서 남을 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의 악은 그것과 다르다. 인간들 사이의 악은 다수의 동등하면서 다른 주체들 사이에서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상대적인 것’이지만, 신이 기준이 되는 악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가 타인에게 준 피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신에게 어떻게 평가되는지에 따라 신에게 악한 일이 되기도 하고, 아니게 되기도 한다. 성경에서 상대 민족을 말살한 왕이나 장수가 신의 칭찬을 받기도 하고, 자비를 베푼 왕이 신의 저주를 받기도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신이 창조한 인간들이 서로를 해롭게 하면 신이 기뻐할 리 없지만, 인간들 사이의 정의가 꼭 인간과 신 사이의 정의와 동일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반대로 의도적으로 악한 행동을 해도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가? 아마도 그 의도가 개인적인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면 신에게 칭찬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전쟁 중 살인이나 하얀 거짓말 등을 예로 한다면 그것이 신의 목적에 합치하는 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사회의 윤리는 인간들 사이의 문제이지만 죄는 신과 인간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내가 기대하고 믿는 바는 신의 속성이 완성된 관계성 즉, ‘복수複數인 단수單數’라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공평함을 인간세계에도 적용하였을 거라는 기대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공정과 이기심, 모욕과 편 가르기는 신의 속성과 배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 화합을 이루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행위들이 신의 기준에도 합당할 것이라고 믿는다.
정리하자면 선악과 사건 이후 신으로부터 타자화된 인간들은 각각의 주관으로 기준을 갖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 신과 연합하기 원한 소수의 인간은 자신의 주체의식을 신에게 양도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자신의 선과 악의 기준을 점차 내려놓고 신의 선악을 기준으로 삼아 매일 자신의 기준이 신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신의 모습과 닮아가는 영적성숙을 더해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들은 종국에는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다른 이들과 화합을 이루며 사랑으로 불리는 신의 뜻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선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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